나태주님의 시 [너무 그러지 마시어요]

♣[소.확.행 일기]

2008. 10. 17. 00:00


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- 시인 나태주
 

//너무 그러지 마시어요.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. 하나님, 저에게가 아니에요.
저의 아내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.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
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에요.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. 장롱에
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구요,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
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 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. 자기의 이름으로
꽃 밭 한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에요. 남편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
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에요.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.
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,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
그러지 마시어요.//
 
안타까운 사람들이 모여 식구가 된다. 안쓰러움이 구들장이 되고, 보살핌이 맞배지붕이 되어 가족을 이룬다
연애가 자라서 배려로 성숙될 때에 우리는 가정을 이룬다.
시인은 근래에 큰병을 앓았다. 이 시는 병상에서 쓴 시다.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서인지, 시가 참 배포가 있다
하나님에게 이 정도로 드잡이 할 수 있는 시인이 몇있으랴. 사랑의 힘이다. 하지만 하나님도 과히
기분나쁘시지는 않을 것 같다. 충만한 사랑의 시는 그 자체가 경문이 되기 때문이다.
 
이 시를 읽은 아내는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으랴.
시인의 아내가 남편에게 화답한 시를 아내의 마음인양 대신 읊조려 본다.
 
//너무 고마워요.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,
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.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
더 남아 있다면,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. 하나님,
저 남자는 젊어서 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. 시에 대한 꿈
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 내온 남자에교.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
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,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
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.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낮게, 한집의 가장으로 소 여물통처럼
배고프게 살아왔고, 두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엔 없었던 남자지요.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
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.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에요.
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. 하나님, 그이에게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
가난한 여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, 저의 남편 나태주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.
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.           아멘.//
 

'♣[소.확.행 일기]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너무 멀리 했던 일기 공간..  (0) 2020.05.28
행복은 마음속에서 자란다.  (0) 2008.10.21